하루키의 글과 의미없는 기억의 글, 그리고 시.
오랜만이야, 라고 나는 말했다. 아니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녀의 필드 유리판에 손을 얹었다. 유리는 얼음처럼 싸늘하고,
내손의 온기는 하얗게 김 서린 열 개의 손가락 자국을 거기에 남겻다.
그녀가 간신히 눈을 떴다는 듯 내게 미소짓는다. 정겨운 미소였다.
나도 미소로 답한다.
꽤 오랫동안 못 만난 것 같군요, 라고 그녀가 말한다. 나는 생각하는 척하며
손가락을 꼽아본다. 3년 정도지. 눈 깜짝할 사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잠시 말을 잊는다. 찻집이라면
커피를 홀짝거리거나, 손가락으로 레이스 커튼을 만지작거릴 장면이다.
종종 네 생각을 해, 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소름 끼치도록 비참한 기분이 된다.
잠 못 이루는 밤에?
음, 잠 못이루는 밤에, 라고 나는 되풀이한다. 그녀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안 추워요? 라고 그녀가 묻는다.
춥지, 아주추워.
너무 오래 있지 않는편이 좋겠어요. 당신은 견디기 힘들 거예요.
그렇겠지, 라고 나는 대답한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신다.
게임 안 해요? 라고 그녀가 묻는다.
안 해, 라고 나는 대답한다.
왜죠?
16만 5천이 내 최고 스코어였어. 기억하고 있나?
물론 기억하고 잇죠. 나의 최고 스코어이기도 했으니까.
그 숫자를 더럽히고 싶지 않아, 라고 나는 말한다.
그녀는 말이 없다. 열 개의 보너스 라이트만이 천천히 오르 내리며 점멸을
계속하고 잇다. 나는 발 밑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웠다.
왜 왔는데요?
네가 불렀어.
내가 불렀다구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쑥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그래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불렀는지도.
얼마나 찾아 다녔다구.
고마워요, 라고 그녀는 말한다. 무슨 말이든 해봐요.
많은 것들이 변하고 말앗어, 라고 나는 말한다. 네가 있었던 게임 센터 자리는
올 나이트 도넛 숍이 되었어. 커피는 지독하게 맛이 없고.
그렇게 맛이 없어요?
옛날, 디즈니의 동물 영화에서 죽어가는 얼룩말이 꼭 그런 색의 오줌을 마셨더랬지.
그녀는 쿡쿡웃었다. 아주 근사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난 그거리가 싫었어요,라고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모든게 조잡하고, 더럽고....
그런 시대였던 거야.
그녀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은 지금 뭐하는데?
번역 일.
소설?
아니, 라고 나는 말한다. 하루하루 거품 같은 것들뿐이지 뭐.
이 시궁창의 물을 저 시궁창으로 옮긴다, 그뿐이야.
재미없어요?
글쎄? 그러고 보니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군.
여자는?
믿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쌍둥이랑 지내고 있어. 커피를 아주 맛있게 끓이지.
그녀는 생긋 미소지은 채, 한동안 허공으로 눈길을 주었다.
왠지 이상해요. 모든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듯한 기분이에요.
아니지, 정말 있었던 일이야. 다만 사라지고 말았지.
괴로워요?
아니, 라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에서 생겨난 것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
그뿐이지 뭐.
우리는 또다시 침묵하였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오래 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따스한 상념의 몇몇 편린은 오랜 빛처럼
내 마음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헤매이고 있다. 그리하여 죽음이 나를 포획하고,
다시금 무의 도가니로 던져질 때까지의 짧은 순간을, 나는 그 빛과 함께 할 것이다.
이제 가는 편이 좋겠어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과연 더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냉기가 혹독해졌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담배를 밟아 껐다.
만나러 와주어서 고마웠어요, 라고 그녀가 말했다. 이제 못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잘 지내요.
나도 고마웠어, 라고 나는 말한다. 안녕.
ㅡ 내가 걷고 있는 이곳은 자주 다니던 거리여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골목길로 접어 드는 곳의 자그마하고 예쁜 커피숍,
그 골목을 따라 왔다갔다 하며 정신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만남이 있겠고, 이별이 있겠고,.
몇몇의 연인들이 내 주위를 멤돌다가 그들이 갈곳을 향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또, 몇몇의 연인들은 거리에 가만히 서서 서로의 두 눈을 바라보며,
짜증을 내고 싸웠다. 정신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그 거리에서 말이다.
골목길로 접어드는 자그마하고 예쁜 까페앞 횡단보도를 건널때,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횡단보도 끝에 있는 서점이었던가.
언젠가 난 그 작은 서점 앞에 서서
너를 기다리며, 너를 생각하고, 너를 추억한 적이 있었다.
너와 내가 지나던 그 거리를 비켜 추억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너를 기다리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있던 서점의 그 자리에서 다시 추억에 잠겼다.
무척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거리에서, 그 사람 하나하나에 네 얼굴을 띄워 생각해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이 너인지 아닌지 가려 내보기도 하고
결국, 그곳에서 너를 찾지도 못했고 내가 갈곳이 어딘지도 몰랐기에
발걸음 닿는 곳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네가 언제 올지 몰라 기다리고 있었어. 30분 밖에 지나지 않았던걸.
무작정 기다리는건 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약속을 그르치지 않잖아.
꽤나 추운 거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체온을 발산하는 것을 막기위해 두터운
옷을 입고 있었고, 보이는 거라곤 그들의 반짝 거리는 눈동자가 약간 보이는 정도였다.
그 거리를 걸어서, 많은 사람들 사이로 널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네 어색하지 앟은 미소가 비춰지던 자그마한 유리.
네 체온이 아직도 남겨져 있을 것 같은, 너와 내가 자리했던 곳.
가벼운 걸음으로 걷던 너와 내가 있던 거리.
"우리는 또다시 침묵하였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오래 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따스한 상념의 몇몇 편린은 오랜 빛처럼
내 마음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헤매이고 있다. 그리하여 죽음이 나를 포획하고,
다시금 무의 도가니로 던져질 때까지의 짧은 순간을, 나는 그 빛과 함께 할 것이다. "
결국, 그곳에서 너를 찾지도 못했고 내가 갈곳이 어딘지도 몰랐기에
발걸음 닿는 곳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순간에
나는 꿈을 꾸었고
행복했다.
혼자였지만
늘 같은 한구석 허전한
귀가길이었지만
나는 꿈을 꾸었고
행복했고
설레었다.
겨울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이제는.
마음 구석 서랍에서 꺼내어보며
늘상 따듯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옛날 이야기 찾다가 싸이월드 게시판에서 가져온 것.
중간의 글은 제가 쓴거에요. 비오는 날보다 눈 내리는 날 기억나는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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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기억의 글은 아닌것 같은데,,.
^^